폐쇄병동이란?
폐쇄병동은 말 그대로 바깥과 단절되어 있고 자유롭게 나가거나 들어올 수 없는 정신과 병동이다. 상시적으로 관리가 필요한 환자, 치료와 회복을 위해 외부와 단절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환자, 개방병동에 비해 자해나 자살 위험이 높은 환자들이 입원해 있다. 개방 병동에 비해 간호사 수가 더 많다. 삼성서울병원에서는 간호사가 폐쇄병동을 안정병동이라고 불렀는데, 입원 전에 내가 여기 폐쇄 병동 맞죠? 하고 물으니까 폐쇄라는 단어에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안정병동이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했다. 사실 폐쇄병동이라고 안 하고, 보호병동이나 안정병동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병원이 요새는 많은 듯 하다. (하지만 폐쇄는 폐쇄다...내 주변 정신병 동지들은 나 포함 모두 폐쇄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소지품 검사
폐쇄병동은 소지품 검사가 정말 빡세다.
- 날붙이(칼, 가위, 면도칼, 손톱깎이)
- 깨질 수 있는 유리나 가위(음료수병, 화장품, 거울)
- 자해도구가 될 수 있는 끈(목도리, 스카프, 운동화 끈, 목걸이, 쇼핑백 손잡이)
- 뾰족한 물건(바늘, 옷핀, 볼펜, 연필, 이쑤시개, 귀이개, 면봉)
- 쇠붙이(캔, 스테인리스, 보온병, 식기, 반찬통)
- 스프링노트(철사를 빼내면 자해도구가 된다)
- 샤워타월(둥그런 것도 빼면 길어지기 때문에 때장갑만 된다)
- 손수건(이으면 끈이 된다)
- 뜨거운 물(병동마다 다른데 간호사의 허락 하에 사용가능한 곳도 있고, 전자레인지로 물을 끓여서 보는 앞에서만 사용하게 해주는 곳도 있다.)
- 비닐봉지(머리 크기 이상의 것은 사용하지 않는다. 쓰레기통, 냉장고에도 종이봉투를 쓴다.)
- 담배, 라이터
- 스타킹, 벨트 사복하의
- 니코틴 패치 등 기타 허가받지 않은 약물 전부
이런 것들이 전부 안된다. 전부 가져간 후에, 나중에 퇴원할 때 돌려준다. 심지어 나는 채식을 하다 보니까 단백질이 부족해서 단백질 파우더를 챙겨갔는데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기 어렵다면서 하루에 필요한 만큼씩 준다며 통째로 가져갔다. 가져갔던 물건 중에 향수가 있었는데 밑 부분이 유리라면서 향수병을 깨서 자해를 할 수 있다고 가져갔고, 옷이랑 필요한 물품을 쇼핑백에 담아갔는데 끈을 빼서 가져가고 종이 부분만 줬고, 거울 달린 팩트도 가져가고, 내가 입고 간 긴 츄리닝 바지도 가져갔다.
그리고 입원해있는 동안 바깥 사람들이 전해주는 물건도 모두 소지품 검사의 대상이다. 그래서 한 번은 보호자가 나한테 내가 좋아하는 사탕을 반입해주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편의점 카운터 부근에 자주 놓여있는 작은 검은색 사각통에 담긴 레몬 홀스 사탕이다) 속이 보이지 않는 통은 위험하다면서, 사탕을 속이 보이는 투명한 지퍼백에 담아오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과자랑 음료수도 속이 불투명하거나 이미 뜯은 것 같아보이는 건 안된다. 나는 소지품 검사를 할 때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었는데 나중에 한 친구가 칫솔을 부러뜨려 그 날카로운 부분으로 자해를 하는 것을 보고 왜 이렇게 많은 물건을 가져가는지 조금 이해가 되었다. 근데 다들 맘 먹고 자해하려면 얼마든지 한다. 그냥 벽에 머리를 박는 식으로 자해하는 친구도 있었다. 폐쇄병동에 자주 입원하는 친구 얘기를 들어보면, 외부에서 음식을 반입해줄 때 약물을 넣어서 자해나 자살 시도하는 걸 도와주는 정신병 동지들도 있다고 한다. 물론 내 주변에는 그런 친구는 없긴 하다.
들어갈 때 필기구를 모두 뺏기고 12색 짜리 사인펜 세트를 주는데, 이 사인펜은 어딘가에 강하게 누를 경우 촉 부분이 붓펜처럼 찌그러지기 때문에 자해 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 이것 외에 다른 종류의 필기구는 반입 불가하다. 나는 보통 가는 펜(유니볼 시그노나 하이테크 0.28)으로 아주 작은 글씨를 쓰는데, 이 사인펜을 병원 생활 내내 사용하려니까 평소 글씨 크기의 2배가 되어서 아주 불편했다. 그래도 다행히 노트는 스프링이 없으면 반입가능하다.
전자기기 사용
핸드폰 사용불가, 전자기기 사용불가, 애플워치 ,갤럭시 워치 종류도 사용 불가이다. 그렇지만 아주 급한 사정이 있을 때에는 주치의 쌤 허가 아래 하루에 1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다. 다른 환자들은 주치의 쌤이 널널한 편이라 하루에 폰 시간을 1시간 씩 계속 쓰는 친구도 있었는데 나는 아니었고, 거기 있는 동안 업무 파일 보내는 거랑 공과금 문제로 두번정도 노트북이랑 핸드폰 사용했다.
삼성서울병원 폐쇄병동의 구조
- 간호사실(비뇨기과,정신과)
- 간호사실(정신과)
- 병동(1인실)
- 병동(2인실)
- 병동(3인실)
- 병동(4인실)
- 병동(5인실)
- 병동(6인실)
- 비뇨기과검사실
- 소아청소년학습놀이치료실
- 집단치료실
정신과 폐쇄병동은 별관 6층에 있다. 구조도 상으로 보면 가운데 연두색 엘베를 기준으로 왼쪽이 폐쇄병동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간호사 스테이션(2)이 있고, 간호사 스테이션을 기준으로 왼쪽은 소아/청소년 병실(5,5,10)이 늘어서 있고, 오른쪽은 성인 병실이 있다. 성인 병실이 소아 병실보다 2배쯤 많다. 소아/청소년들이 라운지에 들어가고 성인 병실 쪽을 돌아다니는 건 허용되지만 성인이 소아/청소년 병실쪽으로 가려고 하면 간호사들이 경고를 한다. 소아/청소년 병실이랑 성인 병실 중간(폐쇄 들어오는 문 바로 옆)에 정수기가 있었다. 성인 병실은 가운데 있는 기둥 형태의 통유리창을 마주본 채로 나열되어 있는데, 친구들이랑 우리가 판옵티콘 된 것 같다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통유리창 앞에 서면 1층에 있는 중정이 보인다. 그리고 5층에 외래가 온 친구가 있다면 서로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손을 흔들면서 반길 수 있다.
환자는 자신의 병실이 아닌 다른 병실에 들어갈 수 없다. 다들 이걸 어기고 누군가의 병실에 들어가서 다 같이 놀고는 하는데, 간호사가 돌아다니다가 보면 나오라고 한다.
문으로 들어와서 간호사 스테이션을 지나쳐 가면 라운지가 나오는데 티비가 있고, 책장에 책이 있고, 동그란 테이블 및 의자 몇개와 소파가 있다.
라운지 가장 안쪽에는 회의실 비슷한 커다란 방이 있는데 이름이 집단 치료실이며, 뭔가 일정이 있지 않으면 평상시에는 비어 있다. 병실 밖으로 나오길 좋아하는 환자들이 보통 여기 모여서 논다. 이 방에는 가운데에 아주 크고 긴 직사각형 모양의 테이블이 있고, 구석에 테이블이 있는데 보드게임이랑 퍼즐이 있다. 입원해있다 보면 핸드폰도 못하고 심심해서 보드게임을 엄청 많이 하게 된다. 폐쇄병동에서는 정신과 약물 바로 알기? 마음돌아보기? 등등 뭔가 의사쌤이 환자들을 데리고 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도 여기서 한다.
간호사 스테이션 옆에 남자 샤워실/ 여자 샤워실이 있는데 간호사한테 샤워할 거라고 말하면 열쇠로 문을 열어준다. 샤워장 안이 좀 미끄럽다. 샤워실 안에서 탈의하고 샤워하고 그 안에서 옷 다입고 나와야 한다. 샤워실 앞에는 드라이기랑 거울이 있다. 드라이기는 못 떼어가게 고정되어 있다.
간호사 스테이션 위에 전자레인지가 놓여 있어서, 허락받고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컵라면도 먹고 친구한테 요리 갖다달라 해서 데워먹었다.
여러 병원의 폐쇄병동에 입원한 친구의 말로는 삼성서울병원이 우리나라 정신과 폐쇄병동 중에서는 가장 시설이 좋다고 했다. 실제로 바깥과 고립된 느낌을 빼면 생활하는 데에 엄청 큰 불편감은 없었다. 그렇지만 입원을 해본 나는 이게 시설이 좋은 거면 다른 데는 도대체 어떻길래 그렇냐고 물어봤는데 우선 거기는 감옥이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 게 굉장히 좋은 거라고 말했다..... 감옥이라니....
면회
내가 입원했을 때(2021년 가을 경)는 코로나 때문인지 면회가 전면 금지였다. 원래 금지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문을 열어 물건을 전해줄 때 간호사들이 그걸 전달받으면서 아주 잠깐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얼굴만 볼 수 있고 손을 잡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그냥 그게 끝이었다. 서로 슬프게 손만 흔들었다. 그리고 폐쇄는 기본적으로 보호자만 물건을 전해줄 수 있다. 처음에는 그걸 몰라서 친구들도 물건을 전해주러 왔는데, 보호자가 오자 간호사가 원래 오던 사람들이 보호자가 아니면 더 이상 오면 안된다고 앴다.
면회가 안되는 대신 전화카드에 돈을 충전해서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 수 있는데, 이 전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전화 시간 끝나기 전에는 갑자기 환자들이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전화가 널널하게 비어있는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으면 속상했다. 바깥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수는 없고, 급하거나 필요한 일이 있을 때 바깥 사람들이 정신과 해당 병동에 전화를 걸어 말을 전해달라 하면 나에게 전해주기는 한다. 근데 급한 일이 아니면 자제해달라고 간호사가 계속 안내한다.
병실 생활
기본적으로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 없으니, 할 게 없고 심심해서 병실 밖으로 나오는 걸 좋아한다면 거기 있는 환자들이랑 많이 친해지게 된다. 거기 있을 때는 폐쇄 안의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져서 환자들이랑 세상 가까운 친구가 된 것 같은데, 막상 퇴원하게 되면 인연이 오래 유지되지는 않는 것 같다.
폐쇄병동에서는 세탁기가 없고, 새 수건을 쓰고 싶으면 보호자가 갖다주어야 한다. 나는 그냥 수건 3개 정도로 썼던 수건을 침대 난간에 걸쳐놓고 말려서 계속 썼다. 하지만 환자복, 침대 시트, 베게 시트 같은 것은 갈아달라고 할 때마다 갈아준다.
폐쇄병동은 밤에 소등을 해도 빛이 완벽히 차단되지는 않는다. 간호사들 있는 스테이션이랑 라운지 쪽은 불이 켜져 있다. 그리고 취침 시간에도 간호사들이 병실을 한번씩 돌아다니면서 환자들을 살펴보러 온다. 병동은 문이 천천히 닫히게 되어 있고 닫히는 부분에 고무 처리도 되어 있어서 소리가 크게 나지 않게 되어 있는데, 그게 자야 하는 밤이 되면 엄청 크게 들렸다. 그리고 새벽에 혈압을 재러 온다. 매일 밤마다 졸려죽겠는데 혈압 재러 와서 비몽사몽했다.
주민회의?
내가 입원했을 때는 주민회의 같은 게 있었다. 이름을 붙이면 뭐랄까.... 병동회의? 일주일에 한번 정도 모여서 의사쌤 중 한명이 사회자를 하고 돌아가면서 칠판에 안건이랑 건의사항 같은 걸 적어놓고 병동 생활을 공유한다. 여기에 나온 건의사항이 이후 병원에 반영되기도 한다. 내가 입원했을 때는 사람들이 라운지 시계 위치를 바꿔달라고 하고 난방 더 해달라고 했는데 들어주셨다.
안정실
폐쇄 병동에서 자해나 자살 시도를 하기는 무척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환자들이 있다. 또, 공격성을 띠거나 다른 환자에게 폭력을 쓰는 환자들이 있다. 이럴 경우 증상이 경미하면 약물을 먹는 정도로 끝나지만 심할 경우 안정제 주사를 맞고 안정실(관찰실)로 끌려간다. 안정실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고 위험행동을 방지하기 위해 cctv가 달려 있고 간호사가 이걸로 환자를 지켜본다.
병원밥
병원밥은 자기가 안 먹는 것이 있으면 빼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데, 아마 아픈 상황에 따라 먹을 수 있는 게 달라서, 또 알러지 문제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건 채식을 하던 나한테는 편한 일이었다. 나는 고기 제외를 신청했고 고기를 제외하니까 매일 단백질 용으로 생선 구이, 생선까스, 생선찜, 생선조림, 생선 강정, 어묵 이런 것만 나왔다. 생선이 안 나올 때는 연두부가 나왔다. 생선까스는 원래 좋아해서 잘 먹었고, 나머지 생선 요리도 처음 먹을 때는 의외로 맛이 나쁘지 않아서 냠냠쩝쩝 잘 먹었는데 나중 되니까 하루 걸러 하루마다 똑같은 음식이 나와서 생선까스 나올 때 빼고는 그냥 다 버렸다. 아깝지만..... 나중에 폐쇄병동 가서 고기 제외, 생선 제외 한 친구를 봤는데 방에 연두부가 5개쯤 쌓여있었다.
개방병동도 폐쇄병동도 매일마다 대변을 봤는지 체크한다. 근데 사람들 다 있는데서 오늘 변은 보셨어요? 하고 물어보면 조금 쪽팔리다...정신과에서 왜 이런 걸 확인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잘모르겠지만 혈압 체크하는 것처럼 건강 상태가 괜찮은 지랑 식이장애 환자들 상태 확인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폐쇄 가니까 식이장애(섭식장애) 환자들이 많아서 놀랐다. 이런 친구들은 밥을 안 먹고 거의 다 버려서 일주일 동안 변을 한번도 안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퇴원하고 나서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고 밤 10시에 잠드는 갓-일반인의 생활을 하다 보니 입원해 있는 동안 정신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근데 이 패턴이 퇴원하고 나서 한달 반 정도 유지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래도 200만원을 쓰고서라도 두달이 넘는 시간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었으니 입원하길 잘했던 것 같다.
'BPD로 살아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와 내 친구들을 통해 바라본 경계성 인격장애(BPD) 진단 기준 (0) | 2022.10.21 |
---|---|
삼성서울병원 구조 및 길 안내 (2) | 2022.10.15 |